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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기억하는 각자만의 방식 06-1세계를 기억하는 각자만의 방식 2020. 12. 23. 04:43
'....어나'
'일어나라고'
누군가의 부름에 눈을 떴다. 믿을 수가 없었다. 눈을 뜨자마자 보인 것은 나와 똑같은 모습을 한 내 자신이였기 때문이다. 놀란 나머지 나는 그저 멀뚱하게 눈만 깜빡여댔다. 내 모습을 하고 있는 수상한 여자 또한 그런 내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더니 이내 답답하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더며 거칠게 내 어깨를 잡고 일으켰다.
"야, 답답하게 언제까지 쳐 자고 있을건데?"
차갑고 축축한 이 칠흙같은 공간, 말투나 분위기만 다를 뿐 나와 너무나 똑같은 여자의 등장.
좀 전까지 분명 사르바의 공격에 거의 죽을 뻔 했는데...결국 죽은건가- 싶어서 난 그녀에게 멍청한 질문을 했다.
"혹시, 나 죽은건가?"
그러자 나의 물음에 그녀는 푸핫- 하고 웃음을 터트리며 나를 비웃었다.
"뭔 미친소리야? 죽다 살아났더니, 정신이라도 나갔나보지?"
나에게 거침없이 날이 선 말들을 내뱉는 나(?)를 보고 있자니 기분이, 영.....별로였다. 그런 감정이 표정에 드러났는지 표정 좀 풀라며 내 뺨을 쓰다듬고는 이내 나를 어딘가로 이끌었다.
"그럼 이 곳은 뭔데, 넌...누구야? 어떻게 나랑 똑같은 모습을..."
그녀는 내 질문에 아무말도 없이, 마냥 걷기만 했다. 이 칠흑같은 공간이 익숙한 것인지 발걸음에 주저함이 없었다. 뭐라도 보이면 생각을 할텐데, 한치 앞도 안보이는 이 시커먼 곳에서 나는 제대로된 행동을 취할 수가 없었다. 그러고보니 분명 아파야할 몸이 전혀 아프지않았다. 온통 의문 투성인 것들을 생각하고 있을 무렵, 드디어 그녀가 한 곳에서 우뚝 멈춰섰다.
짙은 어둠 속에서 연초록빛의 무언가가 제 빛을 뿜어내며 아주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나를 한번 훑더니 아주 귀찮은 표정으로 말했다.
"꽤 오래 걸릴 줄 알고 잠이나 실컷 자려고 했는데, 그 새끼가 다 망쳤어"
누군가를 욕하더니 그 빛이 있는 곳으로 나를 밀어넣었다. 그 순간 빛이 더욱 커지며 어둠을 집어 삼키기 시작했다.
점점 밝아지며 그녀의 모습도 희미해지려는 찰나, 입모양으로 나에게 무언가를 말했다. 그녀의 말을 이해한 것을 끝으로 빛이 주체할 수 없이 더 밝아지며 시야가 온통 하얘지기 시작하면서 정신을 잃었다.
"반쪽 짜리 힘으로 열심히 애써봐."
양껏 나를 향해 조소를 날리는 그녀였다. 그럼에도 눈빛 한구석에서는 어딘가 반가움과 쓸쓸함이 뒤섞여 느껴졌다면, 그것은 나의 착각일까-
정신이 들고 일어나보니 나는 이 곳이 슬리데린 치료실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슬리데린의 상징 로고가 천장에 크게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방금 전 그건 역시, 꿈이였나-
꽤나 오묘한 꿈에 뒤숭숭한 마음도 잠시,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심각한 고통이 몰려와 그대로 다시 누울 수 밖에 없었다.
누워서 한창을 아픔이 가실 때까지 끙끙대고 있을 무렵, 문이 열리며 첼시 교수님이 다가왔다.
"깼니? 많이 아파보이는구나."
"저...얼마나 잔건가요?"
"2주. 꽤 큰 부상이였어. 1초라도 늦었으면 네 허리 신경이 아작나서 다신 걸을 수 없었을거야."
2주라니..정말 나 죽을 뻔한거 맞구나-
생각보다 심했던 부상에 교수님이 이것저것 나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시며 물으셨다.
"금지된 숲 속엔 왜 들어간거니?"
"그게..."
나는 차마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우물쭈물거리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내가 말하기 싫은 것을 눈치채셨는지 교수님은 한숨을 내쉬며 말씀하셨다.
"네가 쓰러지고 나서 학교가 뒤집어졌어. 잠자고 있던 사르바가 깨어나서 교수들이 겨우 수습했단다."
나는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교수님의 말씀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흔들리는 나의 모습을 보고선, 교수님은 한숨을 쉬시며 말했다.
"이유야 어떻든간에 다시는 그 곳에 함부로 가면 안돼. 넌 정말 죽을 고비를 넘겼어"
"네...."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애 먼 손톱만 짖궃게 뜯었다. 교수님이 내 허리 언저리에 하던 치료 마법을 끝내시더니, 이내 다정하게 웃으시며 말씀하시곤 치료실을 나가셨다.
"나중에 태형이한테 고맙다고 전하렴. 널 이동 마법으로 데려온 게 그 녀석이니까-
신경 치료를 해두었으니 오늘은 안아프겠지만, 어디까지나 마법이야. 당분간은 치료실에 더 머물러야겠다. 그럼 푹 쉬렴"
나는 그렇게 일주일동안 치료실에서 며칠을 더 누워있다가 허리가 많이 호전되자, 다시 나의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동안 너무나 많은 사건이 일어난 것이 이상하리만치 평화롭고 고요했다. 김태형의 눈 밖에서 나를 괴롭히던 순혈무리도, 은근한 경멸의 시선을 던지던 아이들도 모두 조용했다. 다 좋았지만 한가지 이상한 점은 김태형이 수업에 오지 않는다는 것이였다. 나는 김태형을 만나기 위해 그의 기숙사에도 가보고, 앞에서 한참을 기다리기도 했지만 결코 문이 열리지 않았다.
나는 한숨을 푹 쉬며 결국 돌아서며 발걸음을 옮겼다. 내 방으로 돌아가는 데 기숙사 복도에서 슬리데린 여학생 두 명이 이야기하는 것을 우연히 듣고 멈칫했다.
"너 아까 유지희가 김태형 방에 가서 기다리는 거 봤어? 멍청하긴...주인도 없는 방에서 계속 기다려서 뭐하는건지-"
"태형이도 참 불쌍하지, 어쩌다 그런 잡종년하고 엮여서 정학까지 먹은거야?"
"금지된 숲에 태형이가 걔를 억지로 데려갔대. 그러다 그 멍청한 년이 사르바를 깨워서 학교가 뒤집어진거고-"
"근데 정학을 왜 김태형이 당하는건데?"
"잡종 걔는 큰 부상을 입었대잖아, 태형이가 안데리고 갔으면 그런 일도 없었을거라고 태형이 잘못으로 처리됐대."
"헐- 미친거 아니야?!"
"내 말이- 다행히 블랙가문에서 손을 써서 정학 한달로 그친거래."
"하- 진짜 슬리데린에 잡종이 끼어든 것도 가뜩이나 짜증났는데, 김태형까지 건들여? 진짜 죽여버릴까-"
이야기를 듣던 여학생이 살기어린 목소리로 말하자, 다른 한명이 이내 겁에 질린 채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그녀의 입을 손으로 막으며 말한다.
"야! 너 미쳤어?!"
그러자 소리쳤던 여학생이 자신의 입을 막은 손을 짜증스레 치우며 말한다.
"ㅇ..읍! 아 손 치워! 왜 그러는데?"
"너 진짜 몰라서 그러는거야? 김태형 있는 줄도 모르고 슬리데린 애 한명이 유지희 죽여버리겠다고 나불댔다가 그 자리에서 정신 마법 당한거? 걔 그래서 정신 치료 받게 되서 그거 때문에 김태형 정학도 더 늘어날 뻔 했잖아!"
"미친....같은 슬리데린이지만 진짜 살벌하다."
"그러니까 말조심해.....얼른 가자, 누가 들을라-"
이내 여학생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자신들의 방으로 사라졌다.
그래, 이상하다 생각했어. 나만 오면 하던 이야기를 멈추고는 다들 제 할일을 하는 척 내 눈치를 보던 것도, 내 앞에서는 이상하리만치 김태형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것도, 전부 다-
마음이 무겁게 짓눌리는 기분이 들었다. 고개를 푹 숙이자 고여있던 눈물이 짙은 녹색 카펫에 후두둑 떨어졌다.
넌 진짜 끝까지 제 멋대로지, 이 이기적인 새끼야-
그날 밤 나는 김태형에 대해 이루 말할 수 없는 죄책감과 미안함으로 밤새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지쳐 겨우 잠에 들을 무렵, 창문이 열리더니 차디찬 새벽 공기를 타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알 수 있었다. 한동안 마법을 가르쳐주지 않으면 절대 내 방에 들어오지 말라며 방문도 걸어잠그고 갖은 잡동사니를 문 앞에 세워두고 못 들어오게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내가 잠이들었다 생각했는지 창문으로 몰래 넘어와 내 모습을 한참을 바라보다 갔었던 김태형이였다.그럼 나는 그런 그가 못내 싫어서 모른 척 외면했고-
"울었나- 거의 다 나았다고 들었는데"
내가 깰까봐 눈물자욱을 손가락으로 조심스레 닦아주며 혼잣말을 되뇌인다. 퍽 다정한 손길에 나는 겨우 그쳤던 눈물이 다시금 샘솟을것만 같아 꾸욱 참았다. 당장이라도 일어나서 왜 거짓 진술을 했냐고, 네가 왜 나 대신 정학을 먹냐고 다그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살도 더 빠진거 같고-"
지금 일어나서 너에게 눈물을 보이면, 남은 밤 동안 나는 속절없이 시간만 죽이며 밤을 새울테니까-
"아프지마"
그러니까 또 와야 해.
"또 올게-"
눈가에 입을 맞추고 그가 완전히 떠나자, 나는 견뎌내지 못할 그의 다정함에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창문가에는 그의 옷깃을 붙잡고 따라 온 벛꽃 한 잎만 고스란히 남겨져있었다. 완연한 봄이였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시린 밤이였다.
여러분들은 모두 똑똑이시니까 잘 이해하셨으리라 믿지만, 제 표현력이 부족해서 아이들의 심리와 감정 변화가 잘 전달이 됐는지 언제나 걱정입니다요....지희랑 태형이 관계가 넘 무서워서 좋아졌으면 좋겠다는 ^한 독자님의 의견을 반영하여^ 이런 장면을 써보았읍니다. ㅎㅎ 어떠신가요~? 전 태형이와 지희의 아슬아슬한 관계가 넘 좋지만 이런 아련 터지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네요! 얘들이 둘 다 슬리데린이라 매운 맛이긴 하지만, 가끔은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넣을테니까 기대 많이 해주세요!! 항상 제 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당 ^0^'세계를 기억하는 각자만의 방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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