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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번째의 너 03화87번째의 너 2022.02.05 07:19
정체 불명의 설표를 따라서 온 곳은 엄청난 대저택이였다. 그가 안내해준 서재 안으로 들어가니 업무를 보는 공간인 것인지 다양한 책들과 책상이 놓여져 있었다. 설표는 체리와 가빈이를 서재 한켠에 놓인 쇼파로 안내했다. "여기서 기다려" 설표가 이리저리 서재를 둘러보는 체리에게 시선을 고정시키며 말했다. "네!" 대답 없는 체리 대신 가빈이가 해맑게 풀린 얼굴로 헤실대며 응답했다. "같이 사는 사람들이 있어, 소개해줄테니까 조금 앉아 있어." "네에~!" 그의 시선은 여전히 체리에게만 꽃혀 있었다.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설표에게 멋쩍음도 느끼지 않는 것인지 가빈은 꼬박 그의 말에 친절하게 대답을 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던 체리는 가빈이 완전히 긴장을 풀어버렸다고 생각하며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그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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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난 태양 1조각조각난 태양 2022.02.01 02:46
HTML 삽입 미리보기할 수 없는 소스 ♩Agnes Obel-Familiar♩ 모든 것의 시작은 천지가 개벽한 태초(太初)의 혼돈에서부터 시작된다. 혼돈 속에서 창세(創世)의 여신 사티브레가 피어났으며, 곧 세상 만물의 어머니가 되었다. 여신은 모든 만물을 사랑했으나, 그 중에서도 최초의 이성(理性)적 존재인 우레스를 가장 사랑했다. 이들은 12명의 틴타, 하늘의 능력을 가진 키를롭스 3형제와 이능을 타고난 헤카이톤스 3형제를 낳아 세상의 모습을 만들어나갔다. 키를롭스 형제는 각각 번개를 다루는 스페로테스, 천둥을 다루는 브론테스, 벼락을 다루는 아르게스가 있었으며, 헤카이톤스 형제는 바람을 다루는 코토스, 남다른 예언 능력을 가진 기에스, 막강한 힘을 가진 가이온이 있었다. 우레스는 신비한 능력을 가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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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번째의 너 02화87번째의 너 2021.08.28 00:11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세요. 날이 끝나갈 때 타오르며 포효해야 하니 빛이 사그라드는 것에 분노하고, 분노하세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은 소리와 함께 깨어나는 정신. 아직도 선연하게 기억하는 아찔한 감각에 체리는 제 목덜미를 한번 매만지다가 이내 방 안으로 향한다. 시간이 되돌아가지만 않았다면 진즉 너덜거리는 거적데기가 되었을 아주 익숙한 옷을 꺼내려는데, 옆에 가지런히 걸어둔 하늘색 셔츠를 툭- 치고 말았다. 옷걸이가 힘 없이 바닥에 떨어지자, 셔츠의 왼쪽 포켓에서 사진 한 장을 토해냈다. 체리의 시선이 떨어진 사진으로 향했다. 허리를 굽혀 사진을 집어든 체리는 알 수 없는 감정이 차오를 것만 같아서 얼른 사진을 포켓에 다시 집어 넣었다. 줄곧 입어왔던 티셔츠를 팽겨치고 팔을 셔츠에 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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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번째의 너 01화87번째의 너 2021.08.24 04:26
"자책하시나요?" 어두운 방안.천장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조명 하나가 체리의 주변만을 겨우 밝히고 있었다. 너무나 어두워서 방의 크기가 가늠이 안될 정도로 조명이 비추지 않는 곳은 새까맸다. 체리에게서 등진 채 별안간 질문을 던지는 남자에게 그녀가 반문하였다. "네?" "이런 상황에서 환자가 일종의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매우 흔한 일입니다." "무슨 상황이요?" 체리는 의자에서 일어나 움직이고 싶었지만, 어쩐지 몸이 움직여지질 않았다. 그때, 여전히 얼굴을 비추지 않는 남자가 아주 느릿하게 고개를 그녀가 있는 방향으로 돌렸다. 보기 싫게 잔뜩 튀어나온 뼈 마디와 닦아내지 않아 이리저리 엉겨 붙어 굳은 피. 그리고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만큼 짓이겨진 피부. 고개를 기이하게 꺾은 채 소름끼치게 미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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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번째의 너 Prologue87번째의 너 2021.08.23 00:14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세요. 날이 끝나갈 때 타오르며 포효해야 하니 빛이 사그라드는 것에 분노하고, 분노하세요." 적막함을 깨고 아침 교양 프로그램에서 잔잔한 성우의 미성을 타고 시 한 구절이 흘러나왔다. 평화로운 아나운서의 미소와는 달리 체리는 교복 치마의 지퍼를 주욱- 잠그고는 서둘러 문 밖으로 향한다. 혹여나 지각하진 않을까 손목의 시계를 확인한다. '오전 8시 16분' 교문 잠기는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은 마음에 체리는 입술을 질끈 깨물곤, 이내 가방끈을 꾸욱 쥐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아침도 거른 공복 상태로 힘껏 달리려고 하니 다리에 힘이 잘 안들어갔지만, 한 번 더 지각하면 한달 동안 교무실 근처의 가장 냄새나는 여자 화장실 청소를 해야 한다.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은 체리는 이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