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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아?"
아무말 없는 찬영에 당황한 것은 나 뿐 만이 아니였는지, 성찬이 의문을 띈 음성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약간의 재촉이 담긴 부름에 찬영은 못마땅한 표정을 여전히 지우지 않은 채, 입술을 열었다.
"이 찬"
찬영이는 본인의 이름만 툭- 내뱉고 입술을 앙 다물었다.
그의 놀라운 용안을 보고 놀란 건 둘째치고, 이유없이 날 선 태도에 경직되어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그 와중에 본인 이름을 '이찬영'이 아닌 '이찬'이라고 소개하는게 귀엽기도 하고 왜 이름이 '이찬'일까 하는 쓸데 없는 생각이 비집고 나왔지만,
다시금 그의 버석한 표정을 보고 그 생각은 쏙 들어갔다.
'저 살벌한 표정봐라....꿈 속에서는 이름이 이찬영이 아니라 이찬인가보네.....귀엽다.....그치만 무섭다......"
성찬은 처음보는 동생의 차가운 태도에 놀라기도 잠시, 안절부절 못하는 내 표정을 보더니 머물 방을 보여주겠다며 숨막히는 분위기에서 나를 구해줬다.
성찬을 따라가면서 힐긋 본 찬영은 여전히 나를 뚫어지게 주시하고 있었다.
헉-!
나는 재빠르게 고개를 돌리고 성찬이의 뒤를 따랐다.
그토록 바라던 사람들이 나오는 꿈이였지만, 저렇게 살벌한 눈빛을 바라던건 아니였는데..,이런 꿈은 안꾸는게 낫다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이유 없이 미움을 받는 것은 꽤나 속상한 일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방으로 사라져가는 찬영의 모습을 보며 허상이지만 그 동안 자신의 꿈에 수없이 나온
다정한 찬영의 모습들이 그리워졌다.
"이 방이예요."
성찬이 방 문 앞까지 친절히 안내해줬다. 자기 방은 1층에 있으니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부르라고 했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방문을 열려고 했다. 그런데 성찬이 여전히 방 문 앞에 있는 통에 그러질 못했다. 의아함을 느끼며 물었다.
"무슨 할 말 있으세요?"성찬이 내 눈치를 살짝 보더니 아까 전 동생 일은 본인이 사과한다며 낯선 사람이 집에 온 게 처음이라 그런거 같다며 이해해달라 말했다.
"아- 전 정말 괜찮아요! 오히려 제가 더 죄송하죠..동생 분이 불편해하시지 않도록 조심 할게요..."
성찬이 해사하게 웃으며 이해해줘서 고맙다고 가볍게 고개를 숙이더니 편히 쉬라고 말하며 이내 1층으로 사라졌다.
사라져가는 성찬을 바라보다 나 또한 방으로 들어갔다. 간단한 가구밖에 없어서 그런지 방은 생각보다 넓어보였고,
항상 청소를 하는지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했다. 대충 방을 둘러보다가 침대에 풀썩 누워 이 자각몽은 언제쯤 깨어나는건가에 대해 생각했다.
'아...그런데 왜 이렇게 잠이 오지?'
침대가 푹신해서 그런건지, 아까 전의 일로 인한 긴장감이 풀려서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아득해져오는 정신을 이겨내지 못하고 눈을 감고 말았다.
🎵Write Down My Feelings- Ahntow
(노래와 함께 들으시는걸 추천드립니다.
글 분위기를 더 잘 이해하실수 있습니다.)발 밑으로 벚꽃잎 한 개가 떨어졌다. 달큰한 바람이 불어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휘날려, 머리칼을 정돈하며 앞을 바라보았다.
또 왔네, 이 장소. 어젯밤 꿈 속에서 본 시계탑 앞이였다. 잠들었는데 또 꿈이라니.
이정도면 여기가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 갈 지경이였다.
'내가 드디어 미친건가.....'
깨어나지 못하고 꿈만 꾸다가 영영 현실로 돌아가지 못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주변을 두리번대는데,
저멀리 두 형체가 웅장함을 뿜어내는 벚꽃 나무 아래 서 있었다. 남자 두 명이 서있는 모습에 혹시 둘 중 한명이 전에 만난 상점 주인이라면 여기서 깨어날 방법을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더 가까이 다가갔다. 두 사람의 뒤로 바짝 다가서자, 내 인기척이 느껴졌는지 두 남자가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다.
" .............."
두 사람의 표정을 확인하자마자, 큰 벚꽃나무에서 무수히 많은 잎들이 우리 셋을 덮치듯이 쏟아져내렸다. 너무 많이 쏟아져내리는 꽃잎들에 그들의 표정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점점 더 많은 꽃잎들이 떨어지며 이제는 시야가 온통 분홍빛으로 가득했을 즈음,
허-억 !
숨을 몰아서 토해내듯이 쉬며 꿈에서 깨어났다.
'왜 그렇게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울고 있던 거지....'
꿈에서 울고 있던 남자는 찬영이, 아니 찬과 성찬이였다. 그리고 그 옆, 금방이라도 무너질것만 같은 표정을 짓던 성찬이 떠올랐다.
꿈이였지만, 어쩐지 떨쳐낼 수 없었다.기분이 이상했다. 아파져오는 머리에 한숨을 푹 쉬고 고개를 들고 새어들어오는 빛을 바라봤다.
창가 너머에 푸른 달이 떠있었다. 무언가 묘한 기시감이 들어, 다시금 창가를 바라보았다.
'잠시만....푸른 달...?'
똑-똑
어두운 시야 너머로 방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소리의 근원지로 고개를 돌리자, 문 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나, 저녁 차렸는데, 드시러 1층으로 내려오세요. 찬이랑 같이 기다리고 있을게요."
성찬이의 목소리였다. 다시금 푸른 빛을 뿜어내는 달을 쳐다보았다. 난 여전히 꿈 속이였다.
달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이내 퍼뜩 정신을 차리고 방 불을 키고 아무것도 놓여져 있지 않은 화장대의 거울을 보며 모습을 단정히 하다,
입고 있는 옷 상태를 보고는 의미 없는 행동을 그만 두고 방을 나갔다.
'어짜피 잠옷 차림인데, 뭐 신경 쓸 필요 있나...'
계단을 내려가면서 도대체 왜 나는 아직도 여기에 있는 건지, 도무지 깨어날 생각이 없는 꿈에 슬슬 현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부엌에 와 있었다. 멍하니 서 있는 나를 보고 그릇에 밥을 옮겨 담고 있는 성찬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앉으라고 말하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지은 흰 쌀밥을 놔주었다.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성찬이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살짝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수저를 들고 밥을 퍼 먹으려는 순간, 옆에서 탁-소리를 내며 수저를 내려놓는 찬이였다. 그리곤 그가 입을 열었다.
"염치없긴-"
그 한마디를 끝으로 찬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성찬이 찬을 불렀지만,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굳건히 제 방문을 닫고 들어갔다. 성찬은 한숨을 쉬더니,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동생은 신경쓰지 말고 어서 밥을 먹으라고 말했다. 기분 나쁜 티를 내면 아까 낮 처럼 내 눈치를 볼까봐, 애써 웃으며 한 숟갈 크게 밥을 떠 먹었다. 몇 숟갈 뜨지 않은 찬이의 밥그릇을 바라보며 더운 밥을 억지로 삼켜냈다.
'얼마 먹지도 않았네.....
밥도 같이 먹기 싫을만큼 내가 싫은가....'꿈 속이지만 어쩐지 속이 상했다. 방금 전의 그 서늘한 눈빛과 꿈 속에서 본 찬의 눈물진 얼굴이 뒤엉켜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지희 누나, 많이 드세요. "
찬이 생각에 수저질이 느려지자, 성찬은 아직도 찬의 눈치를 본다고 생각했는지 내 앞으로 반찬을 밀어주었다. 힐끔 쳐다 본 그는 환한 표정으로 밥을 먹고 있었다. 그의 표정이 아까 전 꿈 속과 상반되어 자꾸만 떠올랐다. 그래서 애꿎은 수저만 꾸-욱 움켜쥐었다.
성찬은 복잡한 내 심정을 전혀 모르니, 이것 저것 반찬들을 친절하게 권했다.
다정한 표정으로 말을 붙이는 그와 꿈 속에서 괴로운 표정을 짓던 그의 모습이 겹쳐져 어딘가 모르게 괴리감이 느껴졌다.
속이 좋지 않았다. 정성스레 차려준 그에게 벌써부터 미안했다.
체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오래 먹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