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상점 01

 

정성찬 x 유지희 x 이찬영

 
🎵백예린, 야간비행

 
당신의 소원을 이루어드립니다.
어서오세요- 꿈의 상점으로-!

수채화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파아란 색감과 자수한 듯 일정한 별들을 박아놓은 하늘. 목이 빠져라 올려다 볼 만큼 고고하게 서있는 시계탑과 풍성한 분홍향기를 잔뜩 과시하며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벚꽃나무까지- 나는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아니 영화에서도 본 적 없는 풍경에 넋을 놓았다.

한참을 시계탑 앞에 서서 고개만 돌려가며 위치를 파악해내려 애썼다. 분명 잠들기 위해 침대에 누운게 마지막 기억이였다.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장소에 잠옷을 입고 맨발 상태로 이 곳에 서 있는 것을 보면 분명 꿈인게 확실하다. 하지만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달큰한 벚꽃향과 피부를 간지럽히는 머리카락들이 생생했다. 당최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이 안되는 상황 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어서오세요. 꿈의 상점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혼자라고 생각했던 공간에서 미성이 들리자 화들짝 놀란 나는 어깨를 들썩이고, 이내 뒤를 돌아 보았다. 맑은 눈망울을 가진 남자가 눈이 마주치자 하얀 미소를 드러내며 웃었다. 남자의 정체는 알 수 없었지만, 이상하게 얼굴을 보자마자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남자의 눈동자에 잘 만 하면 내 얼굴이 비춰 보일 것만 같았다. 정말 딱 그 만큼 그의 눈동자는 빛이 났다. 이런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도 안되는, 자칫하면 생사가 달린 상황 속에서도 태평한 생각을 해댔다. 이런 쓸데없는 생각도 잠시, 입을 열고 그의 말에 대답하였다.

"꿈의 상점이요? 그럼 여기는 꿈 속 세계라는건가요?"

"네! 맞습니다. 지희님은 이해가 빠르시군여. 보통 처음 오신 분들은 많이들 당황하시기 바쁜데-"

나라고 당황하지 않은건 아니다. 근데 너무 비현실적인 공간에 잠옷을 입고 있으니 당연히 꿈이라고 생각들 수 밖에.
현실이라기엔 너무도 아름다웠으니까 말이다.

"그럼 제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건가요? 아니 제 이름은 어떻게.., 당신은 누구예요?"

꿈 속 세계에서 꿈이라는 걸 인지하면 위험하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문득 그 글을 떠올리고 이내 남자를 경계하는 표정으로 질문을 하자, 남자는 아까보다 더 바보스러운 웃음을 짓고 헤헤 - 하고 웃으며, 나의 생각을 읽은 것인지 경계하지 말라며 차근히 설명해주겠다고 했다.

"걱정하지 마세여. 지희님이 생각하시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거예여. 저는 꿈의 상점 주인 이소희라구 해여! 오늘의 특별한 손님인 지희님을 모시기 위해 제가 이렇게 마중 나온거랍니다! 정말 오랜만에 모시는 손님이라 제가 얼마나 떨렸는지 몰라엿! 어제 너무 설레서 잠도 제대로 못 잤....아! 이게 아니지...!!!
우선 저희의 고객을 이렇게 길 한복판에서 오래 서있게 하는건 예의가 아니니까 안으로 들어가실게여."

그는 본인이 어제 손님을 맞이하는것에 대한 설렘으로 선잠을 잤다며 조잘조잘 내 옆에서 떠들었다. 정말 생긴대로 말도 많고 한편으로는 남동생이 있다면 이런걸까 싶었다. 소희는 문득 자신의 본분을 깨닫고는 나를 시계탑 건물 안으로 안내하며 이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지희님이 살고 계신 세계에서는 저희 세계를 '꿈'이라고 부르더라구여. 꿈이라니 우린 진짜 세계인데.....그래서 전 솔직히 저희 상점 이름이 맘에 안들어여. 바꾸고 싶은데 아주 오래전부터 이 이름이여서 바꿀수가 없어여...."

소희는 자신의 세계가 내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는 꿈으로 치부되는 느낌이 뭇 섭섭한지 잠시 말꼬리를 늘이며 풀이 죽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본인 상점 이름이 맘에 안든다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순간 토끼가 귀를 추-욱 늘어뜨리고 있는 것 같은 귀여운 모습에 웃음이 날 뻔 했지만, 간신히 입꼬리를 올리며 웃는것으로 대신했다.

'잘못하면 웃음 터질뻔 했다....잘 참았다 유지희..'

나는 내 스스로를 칭찬하고는
그가 마저 입을 열고 말하는 이야기에 귀를 귀울였다.

"아무튼! 이 세계는 실제로 존재하는 곳이고 지희님이 사는 세계와 같아여. 하지만 다른점이라면 아무래도 다양한 존재와 세계가 있다는거예여. 저희 세계로 많게는 하루에 수만명의 아더들이 넘어와여. 물론 아주 잠시일 뿐이라 저는 너어무 아쉬워여. 아- 여기서 아더는 지희님이 살고 계신 세계의 사람들을 말하는거랍니다. 그들이 머물다가 가는 시간은 불과 10분도 채 안돼여. 어짜피 사라질 존재라서 저희 세계의 일반인들은 그냥 대부분 모른척하져. "

"그렇지만 저는 꿈을 꾸면 항상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는데요? 심지어 제가 아는 사람들도 나온다구요."

내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내뱉자, 소희는 이어서 말을 하며 시계탑 내부로 더 깊숙히 나를 안내했다.

"아더를 다루는 특수한 사람들이예여. 아더들 세계의 말로는 뭐라 그랬더라..? 연기자? 그래, 연기자! 그런 존재들이예여. 아더들이 넘어오면 이들이 머릿 속의 정보를 읽고 주변 사람들의 얼굴을 그려내고 원하는 장면을 연기해여. 그게 그들의 역할이구용- "

"그럼 여기서 그들은 뭐라고 불리나요?"

"좋은 질문이예여. 지희님! 'Persona' 페르소나라고 부르시면 되여. 대부분의 아더들은 이들과 함께 보내다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여. 그런데 가끔 불시착해서 이 세계 사람들과 엮이는 골치 아픈 일들이 생겨났어여. 이 세계의 인간과 지희님이 살고 계신 세계의 인간이 엮이면 아주 복잡한 문제가 생겨나기 때문에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상점을 만들었어여. 저는 아더들을 보는게 좋은데, 오랜 시간 보지 못해서 넘 아쉬운거 있져? 아무튼 저희 상점은 현실에서 온 아더들이 머물다가 갈 공간을 마련해주고 있어여."

"그럼 저도 여기에 머물다가 가는건가요? 하지만 지금까지 꿈을 꾸면서 상점이라는걸 인식하지 못했는걸요?"

"그야 당연하져. 보통은 인식하지 못하도록 만들어두었으니까여. 이곳이 다른 세계라는걸 알게 되면 큰일나여. 하지만 저희 상점에서 10년에 한번 이벤트 차원에서 특별 손님을 1분 뽑아 소원을 이루어드리도록 만들었어여. 정말 재밌겠죠?"

그는 손님인 나보다 더 신이 난 표정으로 질문했다. 하나도 재미없어..
꿈이 진짜로 다른 차원의 세계라는 걸 알게 되자 충격이였다.

"믿기지가 않네요. 말이 되요? 꿈이라 믿었던 게 다른 차원의 세계라니! "

내가 여전히 불신하자, 소희는 그럴줄 알았다면서 한번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더니 이내 공중에 빛을 쏘고 큰 화면이 나타났다.

'와 저건 현실에서도 아직 못 만든 기술인데 개쩐다...'

놀라운 첨단 기술에 입을 벌리며 감탄하기도 잠시 소희는 지난 날들의 손님 기록을 보여주겠다며 사진들을 띄웠다.

"이순신 장군도 저희 꿈의 상점을 이용했었어여. 그 분의 소원은 전투 승리였고 현실에서 이루셨죠. 유관순 열사와 함께한 사진도 있어여. 이 분의 꿈은 독립이였죠. 약간의 오류가 나서 열사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에 소원이 이루어졌긴 했지만...어쨌든 이루어드렸져. 아! 또 유명하신 분으로는...."

소희는 내가 사는 세계의 위인들을 언급하며, 생소한 위인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더 이상의 증거는 불필요했고, 나는 믿을 수 밖에 없었다.
더 말하려는 그를 보고 이내 손짓으로  말을 끊어냈다.

"ㄱ..그..그만요. 믿을 수 밖에 없겠네요...."

" 이제 믿어주시는건가여? 정말 기뻐여! 그럼 이제 설명을 마쳤으니 소원을 이루어드리도록 할게여. 자- 소원을 말씀해보세여.
상점의 주인 저 소희는 이루지 못할 소원은 없답니당~"

내가 잠시 고민을 하며 눈알을 굴려대자 소희는 소원을 말하는 나보다도 더 상기된 표정과 목소리로 여러가지 예시를 들었다.
그런데 이거 어째. 난 별로 원하는 게 없는데-

"없어요."

"세계를 정복하는 것? 세계 최고의 미녀가 되는 것? 억대 연봉의 재벌이 되는 것? 완벽한 배우자를 얻는..! 에? 네? 뭐라구여? 제가 지금 잘못 들은건가여?"

"없. 다. 구. 요"

내가 강조해서 말하자, 소희는 잠시 벙진 채 입을 벌리고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다 이내 다시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정신을 차리곤 말했다.

"아...음... 이런 손님은 처음이라 당황스럽네여..!
그렇지만 저희는 한번 선택된 손님의 소원을 무조건 들어줘야하는 의무가 있어여. 그러니 반드시 소원을 비셔야해여. "

뭔 그런 쓰잘데기 없는 메뉴얼이 있나- 생각하다가 정말 소원도 없고 마냥 귀찮은 꿈이라고 생각하고 아무 소원이나 내뱉으려던 순간,
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인영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 생겼어요. 그 소원이라는거-"

내가 소원이 생겼다는것이 기쁜지 소희는 그 동그란 눈을 더욱 크게 뜨며 질문했다.

"지희님의 소원은 무엇인가여?"

나는 침을 삼키고 입술을 열었다.

"%$@!&이랑 만나게 해주세요. 이왕이면 아주 아주 지독하게 엮였으면 좋겠네요."

나의 말에 소희는 한 차례 침묵을 지키더니 처음 본 그 순간처럼 해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기꺼이 들어드리죠-"

그의 말을 끝으로 시계탑의 종이 댕- 하는 소리를 냈다.
고요한 밤이 깨졌다.
하지만 수줍은 분홍빛을 가득 머금은 벛꽃잎들과 달큰한 그 향을 안고 소희의 검은 머리칼을 흐뜨리는 바람.
그래- 이 이상하리만큼 아름다운 공간은 여전했다.
어쩐지 그의 눈빛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단순히 기분 탓인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