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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이 이상한 곳에 머문지도 어느덧 이 주째였다. 아침잠이 많은 탓에 항상 시계 바늘이 12시를 지나가야 겨우 눈을 뜨곤 했다. 여기와서 하는 일이라곤 정말이지 아무 것도 없었다. 느즈막히 일어나서 성찬이 차려준 밥을 먹고 집 뒷편에 딸린 작은 정원을 산책하며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마냥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며 시간을 죽이곤 했다. 그러면 어느새 바깥 일을 마친 성찬과 찬이가 돌아와서 함께 저녁을 먹곤 했다. (찬이는 싫어했지만, 성찬이의 협박같지 않은 협박으로 겸상 중이다) 한량처럼 아무 것도 안하지만 죄책감은 없었다. 어짜피 나는 이곳 사람도 아니고 때가 되어 기한이 끝나면 원래 세계로 돌아갈테니 말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성찬이가 차려준 저녁밥을 먹으려고 식탁 의자를 빼고 자리에 앉았다. 먼저 자리에 앉아있던 찬이는 내가 오자 어김없이 눈을 부라렸다. 그래, 예상한대로 여전히 이찬과 나의 사이는 좋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거의 이찬의 일방적인 싫어함이였지만-
“.........”
살벌하게도 쳐다보네.
처음에야 눈칫밥 먹느라고 체한 게 한 두번이 아니였지만, 이제는 그러려니하고 애써 그의 시선을 무시했다.성찬이 찌개를 식탁 가운데 내려 놓고 자리에 앉았다. 그의 먹자는 말과 함께 나는 수저를 들고 여러 반찬들을 이것저것 집어먹기 시작했다.
역시 정성찬. 못하는게 없어. 요리까지 잘하는 완벽남이네-
매번 먹는 음식이지만 정말 감탄사가 절로 나올만큼의 음식 솜씨를 가진 그에게 다시 한번 속으로 찬사를 내보내며 먹는데에 집중하고 있을 때, 그런 나를 보며 성찬이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지희 누나, 천천히 좀 먹어. 누가 안 뺏어먹어.”
“으응, 긍데 이거 징자 마시따!”
입 안 가득한 음식때문에 웅얼거리며 말하자,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많이 먹으라며 찌개를 덜어서 내 앞에 놔주었다.아- 참고로 나는 몇 주 간 이 집에 살면서 성찬과는 이미 말을 놓은 상태다.
반면 찬이는 조잘조잘 시끄럽게 떠들며 밥을 먹는 내가 몹시 거슬렸는지 숟가락을 거칠게 식탁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더럽게 좀, 튀기지 마.”
내가 요란법석 떨긴 했어도 튀기진 않았는데...짜증나 이 찬!
그의 한마디에 조용히 입을 다물고 오물거리는자, 내가 시무룩해졌다고 느꼈는지 성찬이 너그럽게 찬이를 나무랬다.
“찬아, 너무 그러지마.”
“형, 너무 정 주지마.”
어쩔 티비 ~ 내가 뭐가 어디가 어때서?
칫, 짜증나. 이 찬.
어쩐지 마음이 콕콕 쑤시는 기분에 재빠르게 나물을 집어서 입 안에 넣었다. 성찬은 그런 찬이를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고 다시금 나에게 고개를 돌려 질문을 했다.
“누나, 그 동안 바빠서 잘 챙겨주지도 못했네. 내일은 뭐해? 시간나면 같이 시장 구경 갈까?그.....누나도 언제까지 잠옷만 입고 있을 순 없잖아..”
성찬은 나의 꼬질꼬질한 잠옷을 한번 쳐다보고 약간 미간을 찌푸리다가 다시금 내 얼굴을 보고 환히 웃었다.
꼬질꼬질하긴 해도 더러운 옷은 아니거든...그렇게 쳐다보면 쪼끔 상처인데...
뭐 아무튼, 이제 슬슬 집 마당에서 시간을 죽이는 짓도 지겨워질 참이였다. 나는 잘됐다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마지막 남은 밥 한숟가락을 입 안에 밀어넣고 여러 반찬들과 씹고 있을 때, 성찬은 말을 덧붙였다.
“찬이도 같이 갈거야. 밖에서 시장 구경도 하고 저녁도 먹고 오자!”
켁-!
이 찬도 함께 간다는 말에 사레가 들려 먹던 것이 입 밖으로 튀어나와 이리저리 식탁 위를 지저분하게 했다. 30초간 정적이 일었다. 그 시간이 나는 1년인 것만 같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치 보이는 것은 바로...내가 씹던 밥알들이 잔뜩 튄 이 찬의 짜증스러운 얼굴이였다.
“...............하아”
그 말과 함께 우리 셋은 동시에 일어났다. 이 찬은 내게 한 마디 하기 위해, 성찬은 그런 찬이를 말리려, 그리고 나는 성찬의 넓다란 등 뒤에 숨기 급급했다.
“진짜 뭐하는 짓이예요? 사람이 교양 없게-!”
“찬아, 참아! 지희가 일부러 그런게 아니잖아!!”
“어...야, 이 찬!! 미..미..미안해!!"
“음......그냥 가야하나?”
다음 날 나는 성찬과의 약속 (이 찬도 같이 간다는 사실은 생각도 하기 싫어서 뺀 건 아니다)을 위해서 뽀대나게 씻고 나와서 준비를 하는 중이였다. 그런데 준비를 하면 뭐하나, 어짜피 또 꼬질한 잠옷이 옷의 전부인데- 거울을 보며 시장에 이런 미친년 차림으로 가야하나 진지하게 고민 중에 있을 무렵,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나, 나 들어가도 되?”
“들어와!”
성찬은 옷 한벌을 들고 내 방으로 들어왔다.
“밖에 나갈 옷 없지? 우선 이거 입어. 시장 가면 옷 사줄게.”
“진지하게 잠옷입고 가야하나 생각했는데, 고마워. 이거 네 꺼야?”
내가 옷을 건네 받으며 내가 성찬이의 옷을..?하는 도키도키하는 마음을 키워갈 무렵,그가 내 마음을 와장창 부시는 소리가 말을 해왔다.
“아니, 찬이 꺼-”
뭐라구요? 그 싹수 노란 이 찬이 옷을 빌려줘? 내 표정이 썩어 들어가자, 급하게 성찬이 말을 덧붙였다."아이, 누나~ 어짜피 내 옷은 커서 누나 체구에 맞지도 않아! 찬이 어릴 때 입던 옷이 아직 남아 있어서 이것도 겨우 찾은거야..."
그래, 사람의 성의를 무시하면 안되지, 지금 내가 찬 밥 더운 밥 가릴 처지냐...그냥 입자.
뭐, 별 말을 하겠어?
“아...응, 잘 입을게”
성찬은 옷 갈아입고 1층으로 내려오라는 말을 남겨두고 방을 나갔다. 나는 옷의 끝자락만 집게 손가락으로 들어 올렸다. 검정색의 무지티와 하얀색 반바지였다. 옷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보고 서둘러 옷을 갈아입었다.
어릴 때 입은거라더니 나한테는 여전히 컸다. 소매는 팔꿈치까지 내려오고 바지는 헐렁하고 무릎까지 내려왔다. 거울을 보니 맞지도 않는 옷을 억지로 입어 우스꽝스러웠다.
내 모습을 보고 비웃을 것만 같은 이 찬의 모습이 떠오르자 짜증이 났지만,아래에서 나를 부르는 성찬의 목소리에 황급히 준비를 마쳤다.
“누나!! 아직 멀었어?!”
후다닥 방 문을 열어 재끼고 대답하며 내려갔다.
“이제 내려가!!”
현관에 다다르자, 이미 신발을 신고 기다리던 둘의 모습이 보였다. 시덥잖은 농담을 하고 있었던 건지 성찬과 찬이는 웃고 있었다. 맞아, 찬영이는 저렇게 웃을 줄 아는 아이였는데..
멍하니 그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자, 고개를 돌려 나를 발견한 성찬이 어서 가자며 문을 열고 나섰다. 뒤이어 나를 발견한 찬이는 웃음기를 싹 없앤 채, 조용히 툭 한마디 내뱉고는 성찬을 따라 나갔다.
“완전 이상...”
이 찬 완전 짜증나, 누가 입고 싶어서 입었나? 나도 억지로 입은거거든?!
신발 코를 괜히 퍽퍽 바닥에 찍어내리곤 팔짱을 끼고 서있는 이 찬을 한번 째려보았다.
“뭘 봐요.”
비록 다시 눈을 깔아야했지만 말이다.
오랜만에 돌아온 꿈의 상점!
여전히 까칠하고 날 선 찬이와 반면에 너무나 다정하게 대해주는 성찬이와의 일상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너무 질질 끄는 것 같나요?ㅠㅠ다음화부터는 사건이 터질테니 지금을 즐겨두시라구영....~ 지희와 찬이는 언제쯤 사이가 나아질까요? 중간에 낀 성찬이만 고생 고생 중~